Shadowy Paradise
1996 - 1999
'전쟁을 기억하기_잊어버리기'
이영준 | 사진평론가
노동당사는 한국전쟁을 기억나게 해 주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바로 이 건물에서 전쟁에 대한 사진을 전시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전시를 통하여, 우리는 이 건축물이 가지는 효과와 손승현의 사진이 가지는 효과가 어떻게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관찰할 수 있다. 구노동당사라는 건축물 자체가 전쟁을 기억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전쟁을 잊게도 만든다. 이 건축물에 관광지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텍스트가 덧씌워짐으로써 전쟁은 잊혀진다. 울긋불긋한 옷들을 입은 관광객들이 울긋불긋한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떠드는 관광적 행위는 분명히 전쟁을 잊는 행위이다. 아니면 그들 나름대로 전쟁을 기억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차원에서, 북한이 이 건물에 씌우고 있는 텍스트와 남한이 덧씌우는 텍스트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다른 한 쪽은 잊어버리는 면도 있다. 이는 구노동당사 건물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태도는 우리가 전쟁에 대해 가지는 양가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일 뿐이다. 즉 우리는 한 쪽으로는 전쟁을 기억하려 하고, 또 한쪽으로는 전쟁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 이후를, 아니 전쟁이 계속 연장되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살아가기 위해 전쟁의 교훈이나 영웅담은 기억해야 하고 전쟁의 트라우마는 잊어야 한다. 많은 역사책과 문학작품, 영화, 다큐멘타리, 보도 이미지들이 이런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 졌다. 전쟁은 어떤 단일한 층위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억하기와 잊어버리기의 변증볍은 한층 복잡하게 작용한다. 전쟁은 우리가 흔히 티비 뉴스에서 보는 물리적인 충돌 뿐 아니라 심리적인 긴장, 언어를 통한 공격, 역사의 굴절 등 수 많은 층위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패키지로 주어지는 것이다.
손승현의 사진은 이렇게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진 전쟁을 한쪽으로는 기억하면서 또 한쪽으로는 잊어버리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쟁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젊은 세대들은 한국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찌만, 전쟁영화나 교과서를 통해, 그리고 학창시절에 미술시간에 그리던 전쟁 포스터 등 많은 종류의 텍스트를 통해 이미 전쟁을 알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을 기억하는 방법을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손승현이 사진을 통해 쓰는 텍스트는 그런 기억과 능동적인 잊어버림의 구조와는 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가 한국전쟁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교과서나 반공교육 등의 공식적인 텍스트에 의해서 기억나는 전쟁을 잊어버리고, 자신만의 전쟁을 기억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화된 텍스트의 결을 살짝 빗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만의 개인화된 전쟁을 개인화된 방식으로 표상함으로써 그런 효과를 얻고 있다.
핀홀 카메라를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노출하여 얻어진 이미지들은 형체가 일그러지고 색채가 변형되어, 마치 된장이나 술이 익듯이 그의 기억의 저장고 속에서 오래 묵어서 형성된 그만이 떠올릴 수 잇는 전쟁의 모습이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전쟁이라고나 할까. 그 푸르스름한 색 속에서 전쟁을 대변하는 폭격기나 탱그, 대포 등의 거물들은 그 과정에서 전쟁을 치루는 담당자가 아니라 전쟁의 화석이 되고 만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보면 이 사진들은 분명히 전쟁의 치열함이나 역사적인 무게들이 빠져버린, 망각의 이미지로 보일 것이다. 이 화석화된 이미지가 손승현의 세대가 가지고 있는 전쟁의 기억이다. 이 이미지들은 단순히 손승현의 개인적인 기억을 반영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를 주눅들게 만드는 전쟁의 권위 마저 부정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교과서 등에서 보던 한국전쟁의 이미지보다 훨씬 정직하고 생생하다. 이 사진들은 우리가 전쟁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습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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