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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당한 북미 원주민 삶과
문화 생생한 기록… ‘제4세계와의 조우’

국민일보 | 2012.03.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제4세계라고 하면 보통 세 가지 특징으로 1, 2, 3세계와 구분됩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박탈당했고, 둘째 토지청구권이 결부되어 있으며, 셋째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민족을 뜻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제4세계로 분류된 민족의 수는 6000개가 넘고 인구로는 10억 명에 달하죠. 집시, 바스크, 사미, 아시리아, 쿠르드 등의 민족들이 모두 제4세계에 속합니다.”

그 가운데 ‘미국’이라는 제1세계 속 제4세계가 되어버린 북미 원주민 공동체들을 찾아 나선 사진작가 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말이다. 첫 행선지는 해마다 북서태평양 1600㎞에 걸쳐 있는 북미 원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집결하는 미국 시애틀에 인접한 올림픽 반도이다. “카누부족이 남긴 바다지도는 긴 나뭇가지 네 개 사이에 지그재그로 이어진 모양이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던 사다리 타기 모양의 나뭇가지 모양인데 이것들은 바다에서의 조류와 바닷길을 표시해서 쉽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나타난 것이다.”(25쪽)

카누 여행은 미국뿐만 아니라 베링해, 뉴질랜드, 호주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카누부족들이 동참하는 중요한 연례행사이다. 강렬한 태양에 피부가 벗겨지고 때론 카누가 뒤집히는 역경을 지나 목적지에 상륙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잃어버린 것을 스스로 되찾았다는 의미를 새기며 한바탕 흥겨운 축제를 연다.

두 번째 행선지는 미국 서남부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 주에 걸쳐 있는 북미 최대의 고대 문명지인 아나사지이다. 기원전부터 14세기까지의 흔적을 간직한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나사지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이룩한 완벽한 건축 문명을 보여준다. “미국 남서부의 흙빛은 대체로 누런색이다. 누런 흙 위로 피어난 형형색색의 식물들도 대체로 누런 흙빛이 담겨 있다. 고대 푸에블로 유적지는 아나사지인이 만든 독특한 건축물의 결과다. 이들이 살았던 고원 지대와 그들이 피신처로 삼았던 절벽 계곡은 혹독한 기후였음을 알 수 있다.”(113쪽)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아나사지인은 그러나 13세기에 찾아온 큰 가뭄으로 인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버리고 떠나가야 했다.

세 번째 행선지는 노스다코타의 비스마르크 공항을 통해야 도착할 수 있는 수우족의 지파 홍크파파족 보호구역이다. 초원에서 말과 함께 살아가는 홍크파파족의 ‘추장 기념 말타기’는 1876년 이들 원주민과 미국 기병대 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던 추장과 전사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전투에서 패한 홍크파파족은 강제 이주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평원에서 강제 이주당한 부족 가운데는 촉토족도 있었다. 촉토족의 이주 경로는 ‘눈물의 길’이라고 불리는데 1831년부터 세 번에 걸쳐 빅스버그와 멤피스에 집결해 오클라호마까지 눈물의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강제 이주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고 혹한 속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의 자손이 클린턴 대통령의 외할머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생물학적으로 1퍼센트의 원주민 피가 섞인 원주민 혈통의 백인으로 원주민 복지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256쪽)

저자는 미국 유학 중인 2003년 북미 원주민들과 처음 만난 이래 해마다 그들을 찾는다고 한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그 자신이 원주민이 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제4세계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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