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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원주민 공동체 지키려는 삶 기록'

경향신문 | 2007.05.
글 임영주, 사진 박재찬기자

왼손으로 말 고삐를 잡은 채 오른손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달렸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안에 있는 12개 원주민 보호구역을. 사진작가 손승현씨(36·사진)가 이 과정에서 사진과 글로 남긴 것은 ‘미래를 향한 말타기’를 하는 미국 원주민의 삶이었다. ‘미래를 향한 말타기’는 백인 정부에 의해 학살당한 원주민 조상의 넋을 기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 매년 12월 수십 명의 원주민이 말을 타고 평원을 가로지르는 행사다.

손씨는 재미 한국인의 삶을 담고 싶어 2002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지금은 고인이 된 임순만 뉴저지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났다. 임교수는 집시, 백정, 원주민 등 세계 천민을 연구했다. 그의 영향을 받아 방학을 이용, 1~2개월씩 원주민 보호구역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한 말타기’에 대해 알게 됐다.

“원주민에게 말타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영국 청교도인들에게 학살당한 조상들을 기리고, 탄압으로 인해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죠. 혹한 속에서 보름간 500㎞를 달리는 과정은 단순한 고행이 아닙니다. 말을 타면서 ‘우리가 누군인가’를 질문하게 되니까요. 달리는 동안 가장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말타기는 일종의 구원의식 같다”는 것을 손씨는 이번 작업을 하며 느꼈다고 한다. “말을 타면 살아있는 생물의 기(氣)에서 나오는 대단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원주민 아이들은 안장을 놓지 않고도 기가 막히게 말을 타죠. 먼 거리를 말타고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생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이 적응하길 한해 두해 기다리죠. 젊은 원주민들에게 삶의 고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말타기 여정에서 원주민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새삼 체험한다.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아지북스)라는 책 제목은 원으로 상징되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원주민들의 의지와 노력을 의미한다.

손씨는 미국 원주민을 비롯해 비전향 장기수, 재미 한국인 등 역사적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특히 소수자 그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 한다.

“공동체마다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운명이 힘의 논리,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죠. 체첸, 티베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아름다운 소수 공동체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으면 힘에 의해 묻혀 버리고 말죠.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서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던지고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공동체에 대해 애정을 느끼는 것은 그런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경험한 데서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어렸을 때 비무장지대(DMZ)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큰 도시뿐 아니라 시골과도 다른 독특한 지역이죠.”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전국을 돌며 살았어도 카메라 덕분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 모여드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그들의 삶도 봤다. 높은 실업률에 생활이 어렵고, 보호구역을 벗어나 도시로 나가봤자 빈민으로 전락하기 쉬운 원주민들. 그래서 자원해서 군인과 경찰이 되고, 이라크나 아프간에 나갔다가 시신으로 돌아오기도 해 장례식이 흔하게 열린다는 원주민 보호구역들. 그가 사진과 글로 기록한 내용은 사진집을 넘어 문화인류학 서적이다. 스스로도 말한다. “전기와 수도도 없는 원주민 보호구역, 그 곳의 문명과 사람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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