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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학살 기리는
300마일 인디언 여정

월간사진 | 2006.10.
진달래 기자

‘미타큐예 오야신(Mitacuye Oyasin)’은 인디언 라코타족이 가장 자주 쓰는 말로 ‘우리는 모두 동족이다’라는 뜻이다. 자연과 사람, 동물 모두를 존중하며 함께 살았던 인디언들의 삶과 철학이 베여있는 말이다. 1492년 이후, 유럽인들이 이주해올 무렵 미국 전역에는 500여개의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후 400년간 백인의 침입과 미국 정부의 억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거나, 학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250여개 부족이 멸족되었고, 현재 생존한 인디언들은 미국 정부가 만들어 놓은 274개의 보호구역에서 유폐되어 살아가고 있다.

손승현은 지난 2003년부터 미국 원주민 인디언에 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디언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인도의 일부로 착각해 원주민을 인디오라 불러 유래된 말로 나중에는 인도인과 구별하기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유럽인들에 의해 붙여진 인디언 보다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미국 원주민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


인디언과 운디드니

1492년 이후, 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인디언의 도움으로 정착에 성공한다. 이후 더 많은 백인 이민자들이 바다를 건너와 나라를 세우면서 그들은 인디언이 살아가는 땅을 차지하려고 한다. 땅이든 자연이든 소유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정한 조약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유럽에서 건너온 콜레라, 결핵, 성병 등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한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 땅을 빼앗으려는 백인들의 욕망이 본격화되고 더 많은 백인들이 건너오면서 인디언의 수보다 백인의 수가 더 많아졌다.

미국 정부는 1868년부터 인디언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 강제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중요 생계수단인 들소를 의도적으로 죽였고, 인디언을 척박한 서부로 내몰았다. 1874년, 블랙힐에서 다시 금광이 발견된다. 블랙힐은 미주리강 유역의 대평원에 있는 거대한 검은 산으로 인디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숭배지였다. 1868년 백인과 인디언 수족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이곳을 인디언 구역으로 정했지만, 금을 찾아 몰려든 백인들에 의해 조약은 깨지고 1876년 리틀 빅혼 전투가 일어났다. 라코타 수족과 샤이엔족의 연합군이 미국 제7기병대와 결전을 벌여 제7기병대를 전멸시켰고, 훈크파파 라코타 추장 앉은소(Sitting Bullr)와 오글라나 라코타 추장 미친말(Crazy Horse)은 인디언들의 영웅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인디언들도 죽었고, 거짓 항복한 백인들과 맞서 싸우던 미친말 추장은 살해돼 파인리지(Pine ridge) 보호구역 내 운디드니(Wounded knee)에 묻히게 된다.

이후에도 수년동안 미군과 인디언의 분쟁은 계속되었다. 1890년 라코타 수족을 시작으로 인디언의 한을 푼다는 신흥종교인 유령춤이 확산됐다. 미군은 이를 해로운 종교라고 규정하고, 앉은소 추장과 큰발(Big foot)을 주동자로 간주했다. 이에 저항하던 앉은소 추장은 보호구역 내 인디언 경찰에게 살해되고, 수족은 미군에 항복하고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돌아갔다. 위협을 느낀 큰발은 미군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오글라나 라코타 추장 붉은구름(Red Cloud)이 있는 파인리지 보호구역으로 향하던 중, 운디드니 근처의 샛강에서 제7기병대에 체포됐다. 다음날 아침 큰발 부족 350여명은 제7기병대원 470명에 둘러싸여 학살 당했다. 13년전 미친말 추장이 묻힌 운디드니 학살의 희생자 중 대부분인 300여명이 여자와 어린아이였다.

소개되는 사진은 손승현이 인디언들의 삶과 문명을 기록한 작업 중 하나로, 인디언들이 운디드니 학살을 기리며 갖고 있는 제례행사인 ‘Future Generation Ride’를 촬영한 것들이다. 매년 12월 스탠딩 락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운디드니까지 300마일(약 482km)을 말을 타고 달리는 ‘Future Generation Ride’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디언들이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퇴색된 몸과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진달래(아래 진) : ‘Future Generation Ride’는 미친말 추장과 앉은소 추장, 큰발 등 인디언들의 중요한 선조들이 외부 억압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던 곳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인디언들에게 상징적 의미가 크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나?

손승현(아래 손) : 운디드니 학살이 있은지 80년이 지난 후인 1968년경, 라코타족의 한 사람이 학살된 큰발의 꿈을 자주 꾸게 된다. 그는 꿈에 대해 아버지께 이야기했고, 선조들께 제례를 올렸다. 하지만 1982년부터 다시 같은 꿈을 꾸게 되었고, 메디신 맨(Medicine Man, 정신적인 지도자)과 부족 사람들이 상의해 선조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제례행사로 큰발 부족이 지나간 길을 말을 타고 달리기로 결정했다. 1986년 12월22일 17명의 인디언이 샤이엔 강 보호구역인 브리져(Bridger)에서 운디드니까지 첫 여정을 시작했다. 운디드니 학살 100년을 기념한 이 말타기 여정은 1990년까지 5년간 계속되었다. 1988년 이후부터는 스탠딩 락(Standing Rock) 보호구역의 지도자인 Ron His Horse is Thunder의 제안으로 원래 루트인 브리져에서 운디드니까지 150마일과, 스탠딩 락의 앉은소 자리를 이어 모두 300마일의 새 루트를 정했다. 그후 1991년 한 해를 쉰 뒤, 1992년부터 다시 시작됐다. 앉은소와 미친말은 인디언이 가장 존경하는 추장이다. 이들은 한번도 미국 정부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1988년 각 부족의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앉은소가 전사한 곳까지 행사를 연장하자고 했을 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인디언의 지도자들은 ‘Future Generation Ride’가 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스스로를 추스리는 과정으로 강조한다. 이를 통해 약물 중독이나 알콜 중독 등 문제를 극복한 인디언은 80%에 이른다. 그들은 각자의 가슴 속에 가족의 건강과 더 나은 삶 등 소망을 안고 달린다.


진 : ‘Future Generation Ride’는 어떻게 진행되나?

손 : 해마다 운디드니 학살이 있었던 12월 중순에 열린다. 영하 20~30도의 추위 속에서 보름간 진행되며, 젊은 세대들에게 선조들의 어려웠던 시절을 경험케 한다. 그래서 ‘Winter Sundance’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 연말과 크리스마스 기간을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추위 속에서 불을 피우고 온기를 유지하며 이 기간을 견디어낸다. 미국 전역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인디언 부족들은 250여개로, 이 기간에 모여 다같이 먹고 자고 춤추는 공동생활을 한다. 출발은 앉은소 자리가 있는 사우스다코타 북쪽 끝 불헤드에서 100여명의 기수가 출발해, 사우스다코타 중간 지점인 브리져에서 300여명으로 늘어나고, 오글라나 라코타에서 미친말 부족이 합류하면서 600여명 규모를 형성한다. 학교나 공공시설의 협조를 받아 체육관이나 야외 천막과 티피를 만들어 잠을 자고, 새벽 5시면 일어나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달릴 준비를 시작한다. 지도자들과 어린 기수들은 제례를 올리고 연기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나면 “인내하라, 그리고 인내하라”라는 말이 울려 퍼진다. 동이 터오는 아침이 되면 힘차게 대초원을 향해 달려 나간다.


진 : 현재 미국내 인디언들은 얼마나 어떻게 남아있나?

손 : 순수혈통의 인디언은 100만명이 못된다. 25% 정도 인디언 피가 흐르면 인디언으로 간주하는데, 이들까지 합쳐 300여만명 정도가 남아있다. 180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백인들에 의해 서쪽으로 강제이주 당하면서 남동부의 체로키족의 경우 오클라호마까지 1,600km의 ‘눈물의 길’이라고 불리는 이주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이주과정의 혹독한 환경과 척박한 이주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인디언이 현재 남아 있는 인디언들이다.


진 : 인디언들의 전통문화는 보존이 잘 되어있는가?

손 : 생존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전통문화도 거의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말타기 행사도 인디언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인내하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며 추운 겨울에도 들판에서 잠을 자던 옛 선조들의 고생도 함께 배워가는 과정이다. 말타기 뿐 아니라 전통 무용인 파우하우라는 것도 있다. 미국 정부에서도 처음에는 억압하려고 했지만, 현재 250여개 부족밖에 안 남은 인디언 문화를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워싱턴에 인디언 박물관이 만들어졌고, 각 인디언 보호구역의 물까지 공수해가며 보존하고 있다.


진 : 사진에서 말을 타는 어린 아이들도 볼 수 있다. 한겨울 150~300마일이라는 엄청난 거리를 말을 타고 가야 하는 행사에 젊은 세대들의 참여와 반응은 어떤가?

손 : 10대 젊은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다가 20대가 되고, 결혼을 해 자식을 낳으면서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갖고 선조들의 정신을 찾아가려는 것 같다. ‘Future Generation Ride’는 올해가 20주년이다. 초창기 때 7~8살 나이로 참여했던 이들이 이제는 자식들을 데리고 와 함께 참여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젊은 세대들도 점차 행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같다.


진 : 촬영을 하며 비슷한 나이대인 인디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20~30대 인디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가?

손 : 경제적으로 많이 낙후돼 있어 인디언 공동체를 발전시키기고 싶어도 힘들다는 고민이다. 인디언의 문화와 정신을 지키려는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시간제 근무를 한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공동체에서 어린 아이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보호구역 내에서는 일거리가 많지 않다. 내가 있던 수족의 경우 70% 이상이 직장이 없었다. 일거리를 찾거나 보호구역이 답답해 인근 도시로 나가 백인들 사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대한 미국 정책의 문제로, 미국 정부는 보호구역은 만들어 놓았지만 그 안에서 자생력을 키우거나 복지를 위한 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진 : 그렇다면 모든 인디언들의 생활은 어느정도로 힘들다는 것인가?

손 : 현재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도시 인디언이나 소수의 인디언을 제외하고 대다수 인디언들은 생계유지조차 힘들어한다.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고, 물이나 전기가 없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다보니 핵폐기물 창고나 우라늄 광산이 보호구역 내에 생기고, 마약 거래 등 불법행위가 빈번히 이뤄진다. 일반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집단 당뇨나 집단 스트레스성 고혈압에 시달리는 부족민이 전체의 과반수 이상이고, 약물 중독자와 알콜 중독자, 자살률 또한 미국에서 최고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파인리지 보호구역의 경우 남성의 평균수명은 48세, 여성은 평균수명은 52세에 불과하다. ‘Future Generation Ride’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도 지원이나 기부를 받아 15일 동안 무료로 먹고, 자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다.


진 : 그렇다면 이들의 생활이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손 :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인데, 이전에 민주당이 집권할 때는 부족하나마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나 생활 복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공화당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는 각종 기금이나 지원이 줄어들었다. 간혹 종교단체에서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는데, 촬영 중에도 봉사를 나온 백인들이 집을 고쳐주거나 물과 전기를 놓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인디언 보호구역 지도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만이 인디언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전통무용 행사장에서 파우하우와 같은 인디언의 춤이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들까지 만날 수 있었다.


진 : 이전에는 전쟁기념관과 장기수 등 한국 근대사에 대한 작업을 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작업이 바뀌었는데, 한국과 미국에서의 작업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손 : 아버지가 직업군인으로, DMZ 근처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보냈다. 그래서 어린시절 가족사진을 보면 탱크나 무기들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 많다. 어린시절부터 전쟁이나 무기 등이 성장환경에 자리하다보니, 사진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사회에 대한 고민과 연관되었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핀홀카메라로 전쟁기념물을 재현한 작업을 2년 정도 했다. 그러다 분단으로 가장 민감하며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작업을 고민하다가 지금은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 선생의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시는 장기수분들이 막 출소하기 시작할 때여서 그분들이 모여사는 공동체를 찾아가 함께 지내며 가치관이나 이념, 삶과 가족사를 들을 수 있었다. 장기수 개개인의 이야기는 잊혀질 역사이고, 또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역사이지만 그속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이야기가 있었다. 작업을 시작한지 2년 반 뒤 송환이 결정될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 인디언과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문명에 대한 관심과 역사에서 소외된 공동체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장기수와 같은 맥락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나라가 미국이었고, 직접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면을 보고 싶어 유학을 선택했다. 그전에 장기수 작업을 하면서는 4년 동안 ‘한국생활사박물관’이라는 책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 역사를 왕조 중심이 아니라 생활사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에 사진을 맡았는데, 이때부터 인간이 이룬 문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진 : 인디언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손 : 인디언에 대해 자료 수집을 하면서 보호구역을 찾았는데, 처음 찾아간 곳은 파인리지 보호구역이었다. 이곳은 인구 5만의 작은 도시에서 차로 2시간 반을 더 들어가야 할 정도로 외딴 곳에 있었다. 그 후 방학 때마다 인디언 보호구역을 찾았고, 방문할 때마다 방문기간이 길어졌다. 특히 2003년에 ‘Future Generation Ride’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지난해에는 8개월 반 동안 있으며 촬영할 수 있었다.


진 : 실제 인디언을 기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손 : 미국에 가기 전에 인디언들의 멸망과정을 기록한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디언의 친구였던 저자가 인디언의 역사를 백인들의 관점이 아닌 수집한 자료와 인디언들의 구술을 통해 사실적으로 쓴 내용에 상당히 공감했다. 이후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미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힘이 없는 그룹을 작업하고 싶었는데, 대상이 히스패닉, 아시아인, 흑인, 인디언 등이었다. 디 브라운의 책을 떠올리며 인디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상상을 뛰어넘는 인디언들의 수난사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인디언 작업은 장기수 작업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지만, 불모지에 가까웠던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직접 일군 인디언 문명에 대한 신선함과 존경심에서 시작되었다.


진 : 실인디언 사진이라면 천막으로 지어진 집 앞에서 고유의 복장을 입은 추장 사진이 먼저 생각난다. 이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것 같다.

손 : 인디언 작업을 중요하게 한 두 작가가 있다. 에드워드 커티스(Edward S. Curtis)와 캘리포니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아담 클락 브로먼(Adam Clark Vroman)이다. 아담 클락 브로먼은 100년전 근대로 넘어가려는 인디언들의 삶을 대형카메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록했다. 반면 에드워드 커티스의 사진은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인디언의 문화와 복식을 낭만적으로 꾸미거나 갖춰 촬영했다. 그리고 거대 기업과 연계해 금장식으로 사진집을 만들어 몇천불에 팔았다. 이렇게 인디언의 모습을 미화시킨 작업보다 인디언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담으려 했던 아담 클락 브로먼의 작업이 더 좋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을 찾아보았고, 내 작업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진 : 인디언을 조금씩 다른 주제와 접근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또 어떤 작업들이 있나?

손 : 모두 다섯개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첫번째는 서기 700년에 건설돼 1300년까지 문명을 꽃피웠던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거주지 ‘아나사지(Anasazi)’를 기록한 작업이다. 아나사지 문명은 콜로라도주와 뉴멕시코주, 아리조나주, 유타주 등에 걸쳐있고, 흔적이 발견되는 곳은 이상하게도 매우 척박한 곳들이다. 두번째는 지난해 나바호족 보호구역에서 다섯달을 보내며 그들을 기록한 ‘디네(dine)’이다. 디네는 나바호족을 일컷는 말로 ‘사람’ 이라는 뜻이다. 세번째는 ‘미국 인디언 노동자(Native American Worker)’ 포트레이트이다. 12개의 보호구역에서 만난 400여명 이상의 다른 직업을 가진 현대 인디언의 모습을 그들이 일하는 장소에서 기록한 작업이다. 네번째는 ‘하늘 프로젝트(Project Heaven)’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만난 백인 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다섯번째가 라코타 수족 사람들의 기록으로 ‘Future Generation Ride’는 이 작업의 한 부분이다.


진 : 한 사회의 이면이나 소외된 계층을 작업하면서 사회변화를 얼마나 의식하는가?

손 : 사진가는 작업을 통해 사회에 참여한다고 생각하지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심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묘사하거나 재현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즉 인간이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구어낸 것을 바탕으로 창작하는 것이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사회에서 잊혀져가는 기록들을 가져와 작업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참여한다. 손승현은 ‘차가운 물속을 걷는(Walking in coldwater)’이라는 인디언 이름을 가지고 있다. ‘Future Generation Ride’를 촬영할 때 기수 200여명이 강을 도하하는 장면을 강물에 들어가 휘적이며 찍고 있는 모습을 보고 스탠딩 락의 대추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차가운 물속을 걷는’은 역사에서 잊혀가는 공동체나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작업에 베여 있는 아픔과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손승현은 그동안 작업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내년 봄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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