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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부서지지 않는다' 신동아 | 2007. 07. |
수천, 혹은 수만년 동안 광활한 아메리카를 무대로 종횡무진하며 살던 사람들이 있다. 물질보다는 정신을, 소유보다는 공유를 중시했던 그들은 자연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삶의 일부로 믿었다. 그러나 뒤늦게 그 땅, 곧 ‘신대륙’을 ‘대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유럽인이 나타나면서 그들의 삶은 위태로워졌다. 유럽인의 ‘대발견’이 있고 나서 400여 년 지난 1890년, 많게는 1억, 최저치로 잡아도 2000만명 이상이던 원주민의 수가 20여만명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백인들이 지정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했으나 보호구역마저 백인들의 땅과 부(富)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보호’되지 못했다. 바로 그 시점에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이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거나, 혹은 ‘저항’을 시도했다고 백인들이 믿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망령 춤’이 원주민들 사이에 확산된 것이다. 백인들은 그 춤을 백인에 대한 총공격의 전야제 정도로 간주했다. 결국 1890년 12월15일, ‘망령 춤’ 확산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 ‘앉은 소(sitting bull)’ 추장이 ‘운디드 니’에서 처형됐고, 이에 불안을 느끼고 이웃 부족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 황망히 이동하던 라코타 부족민들 역시 ‘운디드 니’에서 백인 병사들의 공격을 받고 포화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백인 병사들이 폭도라고 믿었던 희생자들은 실상 늙고 병든 ‘큰 발(big foot)’ 추장이 이끈 갓난아이와 여성, 노인을 포함한, 한마디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300여 명의 원주민 군상일 뿐이었다. ‘망령 춤’과 원의 의미 ‘운디드 니’ 대학살 이후 원주민들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인디언 보호 구역’ 안에서 ‘순응하며’ 사는 것으로 보였다. 1890년대 말에 20만명으로 줄었던 인구는 2000년대 들어 250만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본래적 삶의 터전과 삶의 방식이 박탈된 채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주거가 제한된 원주민들은 실상 미국 내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이 약한 마이너리티로 남았다. 마약 복용과 우울증, 자살률과 유아사망률 1위, 실업률 60% 이상, 보호구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다수가 고혈압 및 유전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등 몇 가지 지표는 이들이 삶의 의욕과 희망을 상실한 채, 근근이 명맥만 유지할 뿐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그러나 사진작가 손승현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말타기-미국 원주민들의 아름다운 도전과 희망’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진 에세이집의 제목은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이다. 원은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는 “라코타 사람들에게 원은 위대한 정령(精靈)을 의미한다. 원주민의 모든 생활 속에는 원이 있다. …세상의 원리가 원의 형태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것이 우리가 저지른 죄였네. 너무 깊은 믿음을 갖고 있었던 죄. …우리가 계속 망령의 춤을 춘다면 들소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지. 조상도 다시 보게 될 거고 다시 옛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일세. 우리 인디언은 계속 춤을 추었네. …원을 지어 지쳐서 더 서 있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춤을 추었네.”(‘상처난 무릎, 운디드 니’, 시학사). 손승현의 책은 바로 그와 같은 원에 대한 원주민의 열망을 담고 있다. 원주민 말로 ‘오마카 토카타키야(Omaka Tokatakiya)’, 즉 ‘미래를 향한 말타기’라고 하는 이 여행은 사우스 다코타 주의 라코타 족 후예들이 운디드 니에서 학살당한 조상의 넋을 기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1986년부터 시작한 행사다. 샤이엔 강 보호구역의 브리저에서 운디드 니까지, 큰 발 추장이 1890년에 지나간 길에다 스탠딩 록 보호구역의 ‘앉은 소’ 캠프를 이어 총 300마일을 매해 12월15일부터 14일간 강행한다. 미국 문명의 현주소 실상 ‘미래를 향한 말타기’는 1970년 이후 시작된 미국 원주민 운동의 연장선이다. 원주민들은 그들의 삶의 반경과 행동 양식을 제한하는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아메리칸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AIM)을 결성했다. 특히 AIM이 주도한 1973년 운디드 니 점거사건은 원주민의 삶과 그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미국 주요 언론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왜 원주민들은 운디드 니를 점거했고, 또 그곳을 향해 말달리기를 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운디드 니가 “원주민들의 삶과 꿈이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그들의 땅을 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 언젠가 버팔로가 돌아오고, 다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망령 춤’을 췄고, 바로 그 이유로 죽임을 당한 곳이 운디드 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운디드 니를 향한 원주민들의 말타기 여행은 일종의 성지순례와 같다. 원주민들은 조상들이 갔던 그 길을 그대로 좇아가며 조상들의 좌절된 희망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었다. 사흘간의 말타기와 하루 휴식이 반복되는 일정 속에서 원주민들은 낮에는 말을 타고, 밤에는 잊힌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정신교육과 역사교육뿐 아니라 ‘이니피’라고 하는 전통적인 정화의식이 포함된다. ‘땀막’ 속에서 진행되는 이니피는 명상과 노래, 고백의 시간, 영혼을 위한 기도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원주민들은 잊고 지낸 조상의 역사와 조상이 누렸던 자유를 되새기고, 나아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저자 손승현은 2003년에 인디언 보호 구역 중 하나인 파인리치 보호구역의 운디드 니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2005년 12월15일부터 2주간 ‘미래를 향한 말타기’에 참여했다. 작가는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코타 족과 함께한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원주민의 삶의 모순과 애환을 책의 곳곳에 담았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 원주민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실상 그들 대부분은 그 ‘고향’이 어디인지, 혹은 조상이 누렸던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이미 잊었다는 것,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이 ‘조국’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미국을 위해 군인으로 자원입대하는 비율이 매우 높고, 그래서 보호구역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전사한 원주민이 많다는 것, 나바다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화력발전소가 있으나, 정작 그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은 다른 주로 공급되고, 따라서 원주민 주거지역에는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원주민의 삶이 바로 미국문명의 현주소다. 그것은 “미국 자체는 군사력, 질병, ‘불명예스러운 세기’의 조약 위반의 결합을 통해 토착 거주민들로부터 몰수한 영토 위에 세워진 백인 정착민 국가”라는 철학자 밀스(Charles W. Mills)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인종계약’, 아침이슬).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그들의 믿음은 계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계속 망령의 춤을 춘다면 들소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조상도 다시 보게 될 것이고, 다시 옛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다큐멘터리 사진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경험 일부를 감지하고, 또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보고 느껴서 진실을 알아가게 하는 매개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사진이 지닌 보다 큰 가치는 역사가 뉴헐(Beaumont Newhall)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바로 그 힘”에 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지닌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