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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속을 걷다

교통방송 | 2011. 11.

해마다 12월이면 미국 사우스 다코타 주에서는 말들이 힘차게 겨울 평원을 내달린다.

열명 남짓의 기수들이 말을 타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수백명이 눈덮인 평원에 뜨거운 기운을 몰고 간다. 주변은 온통 말발굽 소리로 진동한다. 설원을 달리던 무리가 먼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그 울림이 적막으로 변할때면 방금전의 그 공명은 지나간 이들이 하늘과 소통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행사는 ‘미래를 향한 달리기’라는 행사로 오늘날 미국 원주민들이 지내는 조상에 대한 제의다. 1800년대 백인들에 맞서 싸웠던 원주민 선대의 뜻을 기리고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고 이제 원주민들의 연례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말타기 칠일째, 얼어붙은 샤이엔 강에 마침내 도달했다. 원주민들은 예전부터 살 곳을 찾아 이주하는 생활을 영위해 왔는데 대개 강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티피 (원주민의 전통집)들도 강가르 따라 세워졌다. 샤이엔 강 주변으로 누렇게 변해버린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강은 가운데만 제외하고는 얼어붙어 있어 가장자리에서는 아이들이 얼음을 지치며 즐거워 하고 있다. 조그만 샛강과 아름다운 마을. 백 년 전의 기록사진에는 샛강 옆으로 수백개의 티피가 서 있다. 이제는 원주민들의 머릿속에 잔상으로만 남아있는 풍경이다.

원주민들은 세상 만물을 자신들과 동일한 생명체로 여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것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원주민의 종교관에는 이분법적 대립에 의한 단절이나 정복, 지배 대신 자유와 조화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원을 만들어 모여 맨발로 대지를 밟으며 춤을 추거나 몸에 그림을 그리며 제의를 올리는 이들의 관습은 자연 그리고 우주와 소통하려는 행위이다.

이들은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로 물, 불, 공기, 흙을 꼽는다. 물은 인간의 몸을 이루고 대지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구름과 비, 강으로 순환하고 소멸하고 재생된다. 지구를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하는 이들에게 강은 지구의 혈관이다. 한편, 불은 교감의 기능을 한다. 원주민들은 중요한 대화를 할 때 불을 응시하며 서로의 교감을 확인한다. 불을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힘을 재발견한다고 한다. 흙은 식량과 약(약초)을 주고, 인간을 정화시킨다. 생명은 대지 속에 있으며 인간은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지가 인간들을 소유한다고 믿는다. 공기는 모든 생명체를 숨쉬게 만든다. 공기와 바람은 사람이 태어날 때 첫 숨을 주고 마지막 숨을 거두어 가며 모든 동식물에 생명을 선사한다. 이렇듯 세상 만물에는 위대한 정령이 주신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벌레 하나 풀 한 포기조차도 마음대로 해쳐서는 안 된다.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존엄의 대상인 것이다.

원주민들은 이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그들의 영혼도 건강히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구의 지성들은 현대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원주민들의 사상을 거론하기도 한다. 유럽인들에 의해 정복당하기 전만 해도 환경, 생명, 복지, 인권 등 모든 영역에서 원주민 사회는 오늘날 현대 문명사회가 잃어버린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자연 속에서 정신과 육체의 완벽한 일치를 지향하며 매우 절제된 생활을 했다. 그래서 자연의 흐름과 기후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침에 존이 얼음을 깨고 강 중간까지 흙을 뿌려 놓았다. 강 가운데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려는 것이다. 기수들이 말을 이끌고 강 한복판까지 걸어가 물을 먹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에 줄지어 늘어선 사람과 말의 모습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미타큐예 오야신’이라는 말은 미국 원주민들의 한 부족인 라코타족이 흔히 쓴 표현으로, ‘우리는 모두 동족이다’라는 뜻을 지녔다. 자연, 인간, 동물 모두를 존중하며 살았던 원주민의 사람과 철학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런 그들이 왜 오늘날 이토록 궁핍하게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을까. 조상의 혼을 기리고 자신들의 빼앗긴 주권과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미래를 향한 말타기’에 동참해 그들의 한맺힌 과거를 되돌아보고 오늘날 원주민의 사람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속을 걷다’는 원주민들이 선사해 준 나의 라코타 원주민식 이름이다.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눈이 오랜 동안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만물들을 내 두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열어주소서.

자연과 사람을 위한 기도문 - 수우족 구전 기도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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