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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정체성 찾기 ‘구원의식’
함께 달렸어요'

한겨례 | 2007.05.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해마다 12월15일이면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스탠딩록 인디언 보호구역 ‘앉은소캠프’에선 미국원주민(인디언) 10여명이 모인다. 1876년 같은 날 ‘앉은소’ 추장이 불온한 ‘망령의 춤’을 확산시켰다는 혐의로 체포돼 처형된 곳이다. 그는 그 몇해 전 빅혼전투에서 미군 제7기병대를 전멸시켜 원주민 사이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이들 일행이 혹한 속에 500km 평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곳곳에서 온 원주민 기수들이 합류해 28일 최종 목적지 운디드니에 이르면 350여명으로 불어나 관계자들을 합치면 인파는 1000여명에 이른다. 운디드니는 1890년 같은 날 라코타족 ‘큰발’ 추장을 포함해 부족민 300여명이 제7기병대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보름간의 연례행진은 ‘미래를 향한 말타기’. 2005년 이 행사에 참여한 한국인 사진작가 손승현(36)씨가 행사의 전모와 원주민의 애환을 사진에 담고 글을 더해 〈원은 부서지지 않는다〉(아지북스)를 펴냈다. 중대형필름 3천장 가운데 180점을 골라 실었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종의 구원의식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미친듯이 소리 지르며 벌판을 질주하더군요.” 손씨는 500km 여정을 함께하면서 그들이 겪어온 수난의 역사와 소수자로서 겪는 억압을 몸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1492년 유럽인 상륙 전 최고 500개 부족 500만명으로 추정되던 원주민들이 400년이 지나 최종 항복선언을 한 1890년에는 250개 부족이 멸족되고 겨우 남은 10만명은 ‘인디언 보호구역’ 274곳에 수용됐다. 그나마 보호구역에는 핵폐기물 저장고와 우라늄광산이 들어서고 원주민들은 보호장구도 없이 인부로 채용돼 모두 6천명이 방사능에 노출됐다. 이들과 후손들은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1천여개의 광산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복지시설이라고는 거의 없는 보호구역 마을. 원주민 과반이 당뇨와 스트레스성 고혈압에 노출돼 있으며 각종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돼 자살률과 영아사망율이 미국내 최고치에 이른다.

“마약과 알코올에 중독된 참여자 가운데 80% 가량이 이 행사를 계기로 중독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들에게 의미있다는 거죠.”

10여년동안 비전향 장기수 노인들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해 6천장의 필름에 갈무리한 손씨는 2002년 사진공부를 더 하기 위해 뉴욕 유학에 올랐다. 그곳에서 유럽의 집시, 일본과 한국의 백정 등 천민연구와 소수자 인권운동에 봉사해온 임순만 선생을 만나 미국 원주민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됐다. 2003년 파인리지의 운디드니를 시작으로 매년 방학을 이용해 여름, 겨울 두달씩 방문촬영을 하다가 2005년 5월 대학원을 마친 다음 10개월동안 본격적으로 보호구역 순례를 해 필름에 담았다.

“처음에는 눈인사 다음에는 커피, 그런 식으로 그들과 가까워졌어요. 얼굴색이 비슷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생각과 풍습이 비슷한 것도 큰 도움이 됐고요.”

촬영행군 끝무렵 원주민 기수들이 배드랜드의 화이트강을 건널 때 추운 줄도 모르고 무릎 깊이의 강물로 뛰어들어 셔터를 눌렀다. 그런 손씨의 모습이 인상깊었던지 원주민 지도자 론 추장이 그에게 ‘차가운 물 속을 걷는’이라는 원주민식 이름을 붙여주었다. 동족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손씨는 출간한 책 10권을 들고 23일 미국에 가 그들에게 헌정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닷새동안의 ‘추장기념 말타기’에 참여할 계획이다.

“16개주 코리안아메리칸 50명을 만나 비디오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어요. 장기수 노인 70명도 포함해 책으로 낼 계획입니다.”

주변인만 만나 사진에 담는 작업이 무척 괴롭다는 그는 그게 ‘팔자’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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